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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정이 겪는 심리적 위기와 기회, 그리고 Emotional Home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살고,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공부하고 나누면서, 새삼 이민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민을 심리적 측면에서 정의해본다면, 일차적이고 모성적인 환경, 가장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떠남에 이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생존과 적응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가장 익숙한 환경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질문을 하게 합니다. 익숙한 것을 떠나는—떠나야만 하거나, 혹은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그러한 심리상태는 이후 이민자의 삶에서 어떤 반응으로 나타나게 될까요.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땅을 떠날 때의 이유는 보다 단순한 것부터 복잡하거나 거대한 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기회를 찾아서 떠나는 것은 보다 단순한 이유에 속할 것입니다. 학문적, 사회적 성취를 위한 기회, 삶의 보다 나은 여건을 찾아서 떠나는 경우는 현대 사회에서 쉽게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익숙한 곳이 내 존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막는 곳이 될 때, 그 좌절이 오랜 시간 쌓여 이민을 결정하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의 파탄으로 인해 새로운 곳을, 가능성을 찾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한 상황이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지금도 세계에 여전히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과 재해, 살상, 인권 탄압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의 내면적 상황이 본래의 나라 혹은 그 모성적, 일차적 관계와 환경에 적응하며 애착과 안정성으로 뿌리를 내렸던 경우와 그렇지 못했던 경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모성적 환경에 애착이 없었던 사람이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 더 잘 적응하고 살아가게 될까요? 일견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많은 이민자들의 삶을 치료 과정 속에 접하면서, 일차적, 모성적 환경에의 적응성은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계속 접하게 됩니다.


  정신분석가 위니캇 D. W. Winnicott 은 아기가 홀로 있을 수 있는 (capacity to be alone) 것은 엄마 혹은 양육자인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엄마의 존재를 배경으로 아기는 홀로 있을 수 있고, 홀로 있을 수 있을 때 아기는 자기 세계를 탐구하고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인의 정신적 능력과 상황은 물론 아기와 차이가 있으나 근원적인 대상과 자아의 연결성 ego-relatedness 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환경과 도전에 적응하고 자기 세계를 다시 구현해가는 것에 훨씬 안정적 양상을 보입니다.


  제 경우를 생각해보아도 30대의 미국 유학생활은 분명한 목표를 가진 것이었으나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스런 외로움과 우울에 시달렸습니다. 정서적으로 따뜻하지 못했던 가족 관계 속에서 항상 가졌던 어딘가 모를 슬픔은, 새로운 환경과 지적인 도전 앞에서 더 고개를 들었습니다. 또한 제 치료실에서 듣게 되는 많은 내담자들의 이야기들도 그런 사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개인과 부모와의 관계에서 정서적 애착이 희박했거나 정서적 관계보다는 훈육이나 의무가 지배적인 관계였을 때, 이민 이후 새로운 도전들이 밀려들면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의 증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거의 특정한 고통스러운 경험이 소화되지 않고 남아있다가 이민 초기에 강력한 심리적 증상으로 발현되는 경우 또한 많았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러한 개인의 정신적 어려움이 1.5세대나 2세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 있습니다. 부모로서의 개인이 이민자로서 정신적인 소외감과 우울,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현실을 살아남기 위해 힘겹게 애쓰면서 살고 있다면, 사실상 그 개인은 심리적인, 정서적인 공간을 아이들과 공유하기 어렵게 됩니다. 부모의 의식적, 의도적 노력이 물론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숨쉬는 공기처럼 나누어 들이쉬고 있기에, 때로 부모가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방황과 심리적 문제가 가족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부모의 정신적 정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은 측면을 보이는 탓입니다.


  인간으로서의 부모가 ‘완벽’한 경우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부모와의 관계, 일차적인 모성과의 관계나 모성적 환경에의 애착이나 적응성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가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민 오기 이전의 일차적인 모성적 환경에서 서늘함과 공허함을 갖고 살았다면, 그리고 이민 이후의 삶에서 우울과 불안, 충동성 같은 심리적 어려움을 붙들고 살고 있다면, 우리 자신이 이러한 존재적 위기를 제대로 넘기기 위해서나 아이들이 부모가 겪는 혼란을 넘어 정신적으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도 부모 자신이 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떠남과 속함, 상실과 기회, 향수 nostalgia 와 기대 사이에서 우리는 이민자로서 균형을 잡고 정서적인 안식처 emotional home 를 창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처럼 우리 곁에 따뜻한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배우자, 동료, 친구, 부모, 친척, 자녀들과 그런 관계성을 나눌 수 있다면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인 이민자들의 커뮤니티가 이미 커져 있지만, 보다 진실되게 우리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낼 수 있는, “함께 있음”을 경험하고 치유와 회복을 돕는 장이 더 많이 열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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