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이 생생하고 진짜라는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감각은 또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많은 이들이 외적으로는 잘 살고 있으나 내면에서는 왜 끝 간데 없이 공허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지며 견디기 힘든지를 묻습니다.
중년에 이르면 이런 마음은 더 커집니다. 애들도 다 성장했고 부부 간에 문제도 없지만 내가 진실로 누구인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성공적으로 살아왔던 사람의 삶이 급작스럽게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곤 합니다.
표면적인 관찰과 일반적인 상식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삶입니다. 이런 저런 소식을 접하다 보면 우리는 적잖게 충격을 받습니다.
공부를 잘 하고 유순하던 학생이 갑자기 돌발 행동이나 우울증을 보이면 부모님들과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어합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승승장구하던 이가 갑자기 사건사고에 연루되거나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 문제를 일으키면 주위에서는 놀라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사람이 이런 일을 했다고? 설마 그럴 리가…”, “그 훌륭하던 분이 왜 그런 선택을 했지?” “그 애 공부도 잘하고 밝았는데 뭐가 문제래?” 하고 묻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우리는 그 사람들에 대해 중요한 그 무엇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 빠져있었던 것일까요.
유독 이 질문에 몰두하면서 임상 경험을 발전시켰던 한 의사가 있습니다. 도널드 우즈 위니캇 Donald Woods Winnicott (1896-1971)은 영국의 소아과 의사로 정신분석가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의 근본적인 경험에 대한 질문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위니캇은 정신분석가이면서 소아과 의사였기에 아이들과 엄마들을 함께 진료하면서 아기와 엄마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이 아이들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의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 양상이 성인의 참 자기, 거짓 자기 문제와 어떻게 상관되는지 잘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참 자기true self란 말 그대로 참된, 진짜라고 느껴지는 자신입니다. 외부의 인정이나 확인 없이도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느낌,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감각은 건강한 참된 자기의 양상입니다. 이에 반해 거짓 자기false self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도덕적 개념을 넘어서서 진짜가 아닌, 실제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가짜의 자신을 말합니다. 가짜이기에 거짓되며 공허하고 실체가 없다고 경험하는 자기의 양상입니다.
진짜라고 느껴지는 자기의 감각은 이렇게 형성됩니다. 아기의 자발적인 움직임, 요구와 표현에 엄마가 때맞춰 적절히 반응하고 충족시켜주면 아기는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전능한 느낌을 갖습니다. 배고파 울면 엄마의 젖이 물려지고, 만족스러워 웃을 때 환히 웃는 엄마의 얼굴이 아기의 눈에 들어옵니다. 아기에게는 스스로 창조하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아기가 성장하면서 엄마의 반응은 점차 현실적인 한계를 갖게 되고 아기가 누렸던 전능한 느낌은 현실에 맞게 조정되지만 아기와 엄마, 환경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의 양상은 지속됩니다. 충분히 좋은 엄마 good enough mother는 아이를 향해 빨리 현실에 적응하도록 요구하거나 침범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자신의 존재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품어주는 환경을 조성해줍니다. 이렇게 생의 초기에 충분히 만족되었던 감각은 아이가 평생 지녀야 할 감각, 즉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고 자신의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밑거름이 됩니다.
반면에 엄마와 환경의 반응이 적절치 않거나 침범적이면 아기는 자신의 세계란 온전치 못하고 위협받기에 외부의 한계에 빨리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성장과 더불어 엄마와 환경의 요구는 훨씬 커지고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서는 안전하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한다고 감지하고 현실에 잘 적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전시킵니다. 학업적인 능력이 있으면 공부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고, 부모가 심리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순종적이고 밝은 아이가 되기도 합니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아이들이 의식적으로 알고 구분하는 것은 아니라도 외부 현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되기 위해 몰두하면서 깊은 허전함과 상실감을 갖고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강력하게 적응하는 거짓 자기는 자신의 존재 깊은 곳의 참 자기를 감춤으로써 자신의 생명의 본질과 정체성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거짓 자기가 더 강화되고 외적인 현실에서의 성취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적 공허함과 진짜로 살아있지 않다는 느낌은 훨씬 깊어집니다. 진짜로 살아있지 않다는 감각은 돌발적 사건사고를 일으키거나 연루되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외부적인 문제를 만들고 시끄러워지는 것이 오히려 그나마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게 되는 아이러니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 자기가 더 이상 자신의 참 자기를 보호할 수 없다고 감지하게 되는 위협적 상황이 닥쳤을 때, 참 자기가 소멸되도록 놓아두는 것보다 전체로서의 자신을 파괴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위니캇은 쓰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참 자기가 훼손되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를 질문하게 되고 때로 우울이나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참된 자기를 발견해가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참 자기를 회복하는 것은 생명 본연의 기제이고 생명력을 풍요롭고 생생하게 꽃피우게 해주는, 개인마다의 필수적인 과업이기도 합니다. 다만 현실에의 적응을 위해 거짓 자기를 과도하게 발달시켜야 했던 경우에 참 자기를 회복하는 길은 험난하거나 때로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의 실제 내용은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고, 우리 자신의 참된 모습 또한 아직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타인과 자신의 삶을 대할 때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보다 깊은 시선과 성찰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 영국의 정신분석가 위니캇이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Dr. SUJIN RHI
한의사(한국(한의 신경정신과), WA), 미국 공인 정신분석가(NCPs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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